옛스러움과 현재가 공존하는 서귀포시 월평마을은
지형이 마치 달 테두리 선과 같은 언덕으로 둘러싸인 넓은 들과 같다 하여 '돌벵듸' 또는 '돌병디' 등으로 불렸습니다.
예부터 물자원이 풍부한 지역이었으며, 이는 제주도 내에서도 논농사가 가능했던 몇 안 되는 지역 중 하나였다는 점과 마을에 우물터가 있다는 점 등에서 알 수 있습니다.
마을은 1416년(태종16) ‘잔골’(현 월평동 169번지 일대) 지역에 사람이 들어와 살며 설촌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후 1794년(정조18)에 고부이씨가 이주해 현 월평동 445번지에 정착했고, 월평마을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제주 4.3 당시 주변 소규모 마을이 소거되었으며, 피해를 막기 위해 월평마을을 둘러싸는 성담을 쌓아 현재 마을 형태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월평마을 행정지명 변화
연도 | 행정지명 |
1914년 | 제주군 좌면 월평리 |
1935년 | 제주도 중문면 월평리(좌면이 중문면으로 개칭) |
1946년 | 제주도 남제주군 중문면 월평리(제주도제 실시) |
1981년 | 제주도 서귀포시 월평동(서귀읍, 중문면이 통합하여 서귀포시로 승격) |
2006년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월평동(제주특별자치도 출범) 현재 행정동인 대천동이 관할 |
월평마을 주요 지명 & 자원
섬에서부터 빗개덕 사이 절벽 해안을 말하며, 월평 바다 절경 중 최고로 꼽힙니다.
볼래낭 도랭이 섬에서부터 빗개덕 사이 절벽 해안을 말하며, 월평 바다 절경 중 최고로 꼽힙니다.
소 코를 닮아 '쇠코'라 불리며, 파도에 의해 양쪽 구멍으로 뿜어져 나오는 물보라가 장관을 이룹니다.
쇠코소 코를 닮아 '쇠코'라 불리며, 파도에 의해 양쪽 구멍으로 뿜어져 나오는 물보라가 장관을 이룹니다.
냇물이 양쪽에서 흐르다가 바다에서 만나는 모습이 가위와 같아 '진끗(=접다)'이라 이름 붙여졌습니다.
진끗내 (짐꾼내)냇물이 양쪽에서 흐르다가 바다에서 만나는 모습이 가위와 같아 '진끗(=접다)'이라 이름 붙여졌습니다.
달의 정기가 바다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아왜낭(아왜나무)을 심었던 곳이며, 현재 마을 주민 체육 공간으로 이용 중입니다.
아왜낭목달의 정기가 바다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아왜낭(아왜나무)을 심었던 곳이며, 현재 마을 주민 체육 공간으로 이용 중입니다.
월평마을과 강정마을 경계에 위치한 포구.입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해안경승지가 아름답기로 유명합니다.
월평포구월평마을과 강정마을 경계에 위치한 포구.입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해안경승지가 아름답기로 유명합니다.
4.3 사건 당시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쌓은 성으로, 현재 북쪽 성터만 일부 존재합니다.
4.3 북성4.3 사건 당시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쌓은 성으로, 현재 북쪽 성터만 일부 존재합니다.
마을수도가 필요 없을 정도로 물자원이 풍부하여 우물이 발달했습니다. 현재까지도 마을 내에 우물터 13개가 존재합니다.
우물터마을수도가 필요 없을 정도로 물자원이 풍부하여 우물이 발달했습니다. 현재까지도 마을 내에 우물터 13개가 존재합니다.
원담, 겹담, 4.3 관련 성담 등, 기초석을 다져 다양한 형태로 만든 제주 전통 돌담 유산을 잘 보존하고 있습니다.
돌담원담, 겹담, 4.3 관련 성담 등, 기초석을 다져 다양한 형태로 만든 제주 전통 돌담 유산을 잘 보존하고 있습니다.
햇살과 물자원이 풍부하여 한라봉, 레드향, 황금향, 천혜향 등등 품질 높은 만감류를 생산합니다.
만감류햇살과 물자원이 풍부하여 한라봉, 레드향, 황금향, 천혜향 등등 품질 높은 만감류를 생산합니다.
월평마을 백합은 화색이 선명하고 향기가 독특하며, 종류가 다양하고 품질이 우수합니다.
백합월평마을 백합은 화색이 선명하고 향기가 독특하며, 종류가 다양하고 품질이 우수합니다.